비비안 토마스(1910~1985)는 노예의 손자로 태어나 의대 진학을 꿈꿨지만, 대공황으로 모든 학비를 잃었습니다. 1930년 밴더빌트 대학 외과의 알프레드 블랠록의 연구실에 고용되었으나,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식 직함은 '청소부'였고 주급은 12달러에 불과했습니다.
⠀
같은 건물의 식당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. 그러나 토마스는 독학으로 정밀한 수술 기법을 익혀 블랠록도 어려워하는 시술을 해냈고, 1941년 블랠록이 존스홉킨스 병원으로 자리를 옮길 때 "토마스 없이는 가지 않겠다"고 조건을 걸었습니다.
⠀
소아심장내과의 헬렌 타우시그와 함께 '블루 베이비 증후군(선천성 심장결함으로 산소 부족에 빠지는 질환)' 치료를 위한 수술법을 개발했고, 1944년 11월 29일 첫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. 수술 중 블랠록은 토마스를 발판 위에 세워 바로 옆에서 기술적 조언을 받았습니다.
⠀
이후 수천 명의 아기가 이 수술로 생명을 구했지만, 타임지 보도와 JAMA 논문 어디에도 토마스의 이름은 실리지 않았습니다. 1976년이 되어서야 존스홉킨스 대학은 그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고, 그의 초상화를 역대 외과의사들과 나란히 걸었습니다.


첫 댓글을 남겨보세요.